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문단 편집) === 1980년대 : 전성기의 시작 === 나가요 치구사(長与千種)와 라이오네스 아스카(ライオネス飛鳥)가 태그 팀 '''크러쉬 갤즈'''(Crush Gals) 결성했다. 크러쉬 갤즈는 나가요 치구사의 [[미소년]]스러운 외모 덕분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켰다.[* 당시 관중의 80%는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링이 남성 팬들을 모으기 시작한 건 9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앞서 70년대의 뷰티 페어와 비슷한 케이스로 보이지만, 뷰티 페어가 노래로 먼저 인기를 얻은 것과 달리 크래쉬 갤즈는 경기하는 모습으로 먼저 인기를 끈 뒤에 음반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러들은 거의 반쯤 연예인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이들처럼 음반을 내는 등 연예계 활동에 발을 걸치는 경우가 많았다. ~~성공한 케이스가 드물 뿐~~] 1985년. 재팬 그랑프리와 태그 리그 더 베스트가 개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1986년 4월 5일. 여성들은 경기를 치른 전례가 없던 양국 국기관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가진 여성들이 되었다. 당일 메인이벤트는 데빌 마사미와 라이오네스 아스카의 WWWA 월드 챔피언쉽 매치. 같은 해에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단체인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JWP)이 출범했다.[* [[큐티 스즈키]], 다이너마이트 칸사이, [[오자키 마유미]] 등의 쟁쟁한 선수들이 간판 스타로 활동했던 단체다.] 1987년 10월. 일본 레슬링 협회와 함께 제1회 전일본 레슬링 선수권 대회 합동 개최했다. 본 대회는 아마추어 레슬링 대회였으나 전녀의 훈련생들을 대회에 내보내기도 했다. 1989년. 크래쉬 갤즈가 해체하고 [[불 나카노]], [[아쟈 콩]] 등 악역 레슬러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악역 선수들은 그야말로 악역답게 마냥 미움받는 존재였는데, 불 나카노가 단체의 중심으로 올라선 후 악역이라도 경기를 잘 하면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남자 팬들이 늘어나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